본문 바로가기

기타

정기 검진 후 유산

반응형

10월15일은 입체초음파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여느때와 같이 남편과 같이 병원에 갔는데, 초음파를 보니 반짝거려야 할 아기심장이 뛰지 않는 것 같았다.

초음파 봐주시는 쌤의 표정이 심각해졌고 진료를 봐야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오전 9시에 병원에 열리자마자 갔는데 월요일이라 사람이 많았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울컥했지만 예상이 틀리길 바라며 순서를 기다렸다.

그러나 진료실 쌤은 역시나 내가 예상한 대로 아기심장이 뛰지 않는다며 원인은 알 수 없다고 설명해주셨다.

처음에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지만 나중에는 실감이 나기 시작하면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아기를 품은지 27주가 지나서 몸에 최대한 무리가 가지 않게 유도분만으로 아기를 낳아야하고, 16주가 지나면 법적으로 화장을 해줘야한다고 그랬다.

그 소식을 듣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 하루 아침에 일어난 충격적인 일에 나도 남편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배는 아직 불룩 나와있는데, 이 뱃속에 있는 아기가 심정지로 이미 사망한 상태라고 하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모든게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나에게 이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죽고싶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남편은 괜찮아보였는데 저녁이 되니 참았던 눈물이 터졌는지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보는 모습이었고 그렇게 우는 모습에 내 마음이 너무 아프고 속상하고, 나때문에 이런 일을 겪는 것 같아 미안했다.

그 와중에도 남편은 내 탓이 아니라며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자기자신도 누구보다 힘들고 속상하면서 나를 위로해줬다.

너무 슬프고 힘들어서 잠도 오지 않았고 밥맛도 없고 멈출 줄 모르는 눈물만 계속 흘렀다.

양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엄마가 담주 월요일에 신혼집으로 오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세상에서 제일 속상한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었다.


10월 17일 월요일에 병원에 방문해서 본격적으로 아기를 보내줄 준비를 시작했다.

진료실에서 자궁수축해주는 약을 자궁 속으로 넣고, 입원 수속을 한뒤 알약으로 2시간마다 자궁수축 알약을 계속 먹었다.

입원실에 남편과 엄마가 같이 교대로 있어도 되는지 알았는데 보호자1명만 있을 수 있다고 해서 남편이 병원에 있고, 엄마는 신혼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그때부터 약하게 가진통이 시작됐고 처음에 어느 정도는 참을 수 있었는데 저녁 8시가 되니 점점 식은 땀도 나고 참을 수 없는 처음 겪는 진통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오전 10시반부터 시작된 진통이 밤 10시가 되니 너무 진통이 심해서 걷는게 힘들어서 휠체어를 타고 수술실로 이동했다.

하지만 자궁이 2.5cm 밖에 열리지 않아서 좀더 있어야된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차라리 누가 기절시켜줬으면 좋겠다, 제왕절개를 시켜주면 안되냐며 엄청난 고통에 울며불며 얘기했지만 늦은 시간이라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하셨다.

간호사 쌤도 내가 너무 고통스러운 건 알지만 자궁이 더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된다는 말을 해주시며 토닥여주셨다.

그러다가 밤 10시 15분쯤 됐을까 느낌이 와서 수술실에 들어가서 양수를 터트리고, 태반도 꺼내고, 아기도 보내주고 왔다.

뱃속에 있을 때부터 누구를 닮았을까 기대하며 기다렸었는데 얼굴을 보자니 트라우마처럼 계속 생각날 것 같아서 차마 보지 못하고 보내줬다.

그 후 회복실에서 회복하는 동안 남편이 와서 서류를 작성하고,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 쌤이 나를 휠체어에 태워서 입원실로 데려다 주셨다.

그리고 피로 물든 속옷을 새 옷으로 갈아입고, 그렇게 입원실에 나와 남편만 남게 되었다.

남편이 안아주며 너무 고생했다며 나를 꼭 껴안으며 토닥토닥 해줬다.

엄청난 진통에 고통스러워하는 내모습을 12시간 내내 봤을 남편도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텐데 나를 위로해주기 바빴다.

참 미안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너무 울고싶었지만 내가 울면 남편도 힘들테니 꾹 참았다.

모든 일이 끝나니 피곤이 몰려와서 불을 끄고 나도 남편도 기절하듯 잠자리에 들었다.


10월 18일 화요일이 되었다.

자궁수축약을 먹으면 오한이 와서 입원실에 있는 내내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었는데 새벽에 너무 더워서 3시쯤 잠에서 깼다.

남편은 몸에 열이 많아서 가뜩이나 땀이 많이 나는데 나한테 다 맞춰주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있었다.

그래서 땀을 조금 닦아주고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줬다.

깨있는 동안 잠시도 맘편히 있지 못했을 텐데 자는 동안만큼은 편안하게 잤으면 싶었다.

그뒤로 난 우리 소식을 듣고 함께 슬퍼하며 위로해줬던 사람들에게 카톡으로 길게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우리 가족들도, 남편 가족과 친척들이 우리 걱정을 정말 많이 해주시고 위로도 많이 해주셨는데 너무 감사했고 위로가 됐다.

8시에 아침이 나왔고 나는 이틀만에 첫끼를 제대로 먹었다.

어제는 진통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먹어도 다 토를 해서 먹지 못했다.

그뒤로 식곤증 때문인지 남편과 나는 다시 낮잠을 잤다.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놨는데 마침 핸드폰을 보니 아빠한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엄마나 시댁 부모님께는 전화연락을 자주 했는데 아빠한테는 전화를 못드려서 그게 너무 마음에 걸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우리딸 고생 진짜 많았다.. 너무 마음쓰지 말라"는 그 말에 통화를 끊자마자 꾹 참았던 눈물이 확 나오고 말았다.

사실 전화를 할 수는 있었는데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 눈물이 너무 쏟아질 것 같아서 차마 하지를 못했다.

퇴원하기 전에 아빠 목소리를 듣고 통화를 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공사현장에서 일하시는데 내가 전화를 하다가 혹시나 사고가 날까봐, 다칠까봐 평소에도 전화하기가 조심스럽다.

그래서 항상 마음에 걸리고 아빠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리고 10월 21일이 되었다.

어제 본가로 데려다 드리기 전에 저녁식사로 추어탕집에 갔는데 돌솥밥도 추어탕도 너무 맛있어서 거의 안남기고 다 먹었다.

엄마는 내일 오전에 병원검진 결과를 들으러 가야해서 어제 저녁에 본가로 데려다 드렸고, 나는 다시 남편과 신혼집으로 돌아왔다.

엄마가 집에 있는 동안 하나도 심심하지 않았고 너무 잘 챙겨주셔서 몸도 마음도 완전히 안정을 취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고마웠다.

맨날 두명이서만 먹다가 세명이서 같이 밥먹으니 입맛도 더 생기고, 슬픈 생각보다도 좋은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하루에도 여러번 밥은 잘 챙겨먹는지, 컨디션은 괜찮은지 계속 연락하면서 지내니 그렇게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다.

힘든 일을 겪으면서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제일 많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 부부를 사랑하고 생각하고 마음써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많이 느꼈다.

아직은 나도 남편도 몸과 마음이 힘들고 슬프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서 많이 좋아지면 한분 한분 다 찾아뵙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올해는 회복하는데 총력을 다 하려고 한다.

두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남편과 이 일을 계기로 더 가까워지고 깊어진 느낌이 든다.

어떤 일이든지 깨닫고 배우고 느끼는게 있는 것 같다.

오늘부로 너무 슬퍼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먼저 하늘로 간 우리 아기가 나를 보며 슬퍼할 것 같아서.. 앞으로는 많이 웃으려고 한다.

아기를 떠올리는 것이 아직은 슬프지만 그래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잊을 수 없다.


아가야 너무 사랑하고 보고싶고 나중에 꼭 다시 만나자.. 언제든지 기다릴게! 사랑해 우리아가❤️

반응형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아보험 보장범위 및 선택사항  (0) 2023.02.22
결혼하지 말아야할 남편  (0) 2023.02.22
초기 주차 유산 이야기  (0) 2023.02.22
아기 수면 교육 방법재우기  (0) 2023.02.21
분만시 함께할수 없다는 남편(?)  (0) 2023.02.21